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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정부가 좌파혁명 완수하나" 2008년 7월 4일자 동아일보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칼럼이다.
글의 시작은 "정말이지 이념논쟁은 하고 싶지 않다"로 분명 시작한다. 두 번째 문단의 시작도 좋다. "색깔론을 들먹이는게 아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좌파"나 "좌측", "빨갱이"라는 낱말의 사용이 16회정도 나온다. "우파"라는 낱말은 4번정도 나온다. 분명 시작은 색깔론을 들먹이지 않겠다고 경제를 살려보자는 취지로 보이는데 막상 끝까지 읽어보면 글의 시작되는 관점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다. 그냥 시작부터 솔직하게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빨간물 들수 있으니까 국민들 조심해라라고 하면 된다. 그렇게라도 했으면 편집국 부국장이라는 자리가 덜 창피했겠다. 글의 마지막 부분, "고통 떠안을 아이들이 불쌍하다" 을 보고 떠오른 생각은 혹시라도 이글을 보고 논술공부를 할지 모를 학생들이 있을까 걱정된다. 10대 학생들이 이런 글을 모범으로 삼아 글 쓸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1. 다카하시 데쓰야(지음), 이목(옮김), <<국가와 희생>>, (책과세계, 2008년 1월)
2. 존 키건(지음), 정병선(옮김),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지호, 2004년 9월) 3. 존 엘리스(지음), 정병선(옮김), <<참호에서 보낸 1460일>>, (마티, 2005년 11월) 역사적인 관점에서 전쟁을 “약탈을 목적으로 삼는 집단적 사업”(존 키건(지음), 정병선(옮김),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지호), p. 16)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집단의 위신이나 영토확보를 목적으로 삼는 “풍토병 같은 현상”(같은 책, p. 18)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근대국가가 등장하면서 전쟁은 소수의 전쟁 참여자가 아닌 국민 모두의 전쟁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국가간 전쟁에서 내셔널리즘과 전사자 추모는 절정에 이른다. 식량자원과 에너지자원은 지역적으로 편중되어있다. 편중된 자원으로 인해 자원이 풍부한 지역과 그렇지 못한 지역사이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있어왔다. 이 갈등이 증폭되어 나타나면 약탈과 살육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은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 개척과 외부세력과의 전쟁을 통해 확인된다. 브로델에 따르면 “그리스 인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리스는 가난한 농업국가였고, 농부들은 좁은 땅뙈기에 매달려 있었다. 이들은 도시주인이나 이웃왕에게 시달리다가 결국 도주”(페르낭 브로델(지음), 강주헌(옮김), <<지중해의 기억>>, (한길사), p. 353)하기까지 했다. 고대 그리스 사회는 자신들에게 부족한 식량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개척은 피할 수 없었고 과도한 식민지 개척과 부의 축적으로 몰락하게 된다. 이와달리, 고도화된 사회의 경우, “개인.가문.집단의 위신”이나, 종교적 신념,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전파때문에 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종교적 신념의 충돌의 예로, 이슬람 세력이 7세기 무렵부터 강력하게 성장하면서 유럽사회와 이슬람 세계는 각자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하다 갈등이 깊어졌다. 1571년 이 갈등은 결국 레판토해전으로 터져나왔다. 그 이후로 “정치이데올로기가 전통적 신념임을 주장하며 종교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었다. 근대를 촉발시킨 30년 전쟁(1618 - 1648)을 계기로 이전까지 종교가 차지했던 자리를 국가가 “독립적 도덕주체”로서 대신한다. 30년 전쟁의 승리국이었던 프랑스는 독립적 도덕주체로 근대국가의 기틀을 빨리 마련했다. 프랑스는 그 과정에서 1793년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시민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국방의 의무를 져야한다는 법령을 제정하고 엄격히 시행했다. 국민군대를 마련한 프랑스 제 1 공화정은 유럽의 다른 지역에 있는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평등.박애’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그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대프랑스동맹을 상대로 국가전쟁을 벌였고 이를 정당화했다. 이렇게 최상위에 위치해 있는 국가는 폭력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위를 상비군의 창설을 통해 확고하게 마련하였다. 프랑스를 모델로 유럽의 각국들은 국방의 의무에 대한 프랑스의 징집제와 유사한 법령을 제정했다. 19세기 말경에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젊은 시민 남성을 무차별적으로 차출하여 전쟁터로 내몰게 되었다. 국가가 자신의 물리력을 행사하면서 19세기 당시 시민들은 국가를 “군복무 시키는 기구”로 인식하기까지 했다. 근대국가는 종교가 누렸던 보이지 않는 세계 지배력에 정당화된 물리력까지 얻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을 확실히 지배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국민지배에 대한 헤게모니를 갖춘 국민국가는 피히테와 르낭같은 지식인들을 통해 시민을 강제로 징집하는 국민국가의 이미지를 떨쳐내었다. 국가는 대신 군인으로서 국가를 향한 충성과 희생이 숭고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심지어는 종교적인 순교와 국가를 위한 죽음을 동일시하는 논리까지 등장시켰다. 유럽 각국은 “자국의 전몰병사들을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영속적인 존재로 미화”했다. 1차 대전을 계기로 군대에 들어간 병사들은 군사훈련은 기본이고 명예로운 군인의 행동규범까지 배웠다. 군인들은 여기에 애국심까지 고취되자, 그들은 ”1차 세계대전의 참전이 조국의 선행을 위한 일이며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전례없이 대규모 살상이 눈앞에 보이는 전장에 있던 참전병들은 분명 이전까지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투에서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죽더라도 조국에 봉사한다는 생각”[존 엘리스(지음), 정병선(옮김), <<참호에서 보낸 1460일>>, (마티), p. 277)으로 적진으로 돌진했다. 총력전으로 일컬어질 정도의 전쟁양상과 병사들이 느꼈던 공포감이 알려지면서 전쟁의 참혹상은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이러한 정신적 충격은 “국민국가의 방위라는 신성한 임무수행”으로 완화되었다. 유족과 동포들은 가족들을 전쟁터로 내몬 국가를 비난하기 보다 전사자들을 위해 “영령추모와 제사”를 통해 애도의 뜻을 보였다. 국민에 대한 국가지배 이데올로기가 근대국가가 시작된 뒤 100 여년이 안되어 국민들에게 얼마나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교육과 상비군을 그 특징으로 삼는 근대국민국가는 200여년의 짧은 기간에 국민에 대한 강한 지배이데올로기를 확보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민국가간 상호 내셔널리즘이 충돌하여 국가전쟁이 발발하면 국민들을 마음껏 차출하여 국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게까지 만들었다. 전사자들을 “영웅으로 떠받들고 그들을 기념하고 칭송하는 시설을 마련”하는 상황에서 숭고한 희생의 논리를 비판하는 것은 다카하시 데쓰야의 말처럼 “무력하며 오히려 비판자를 체념하게까지 만드는 위력마저 발휘하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자신의 죽음마저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질 수 있는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
1. 우리는 모두 세계를 이해할 능력을 갖고 있다.
2. 세계의 사물을 분류하는 기준, 즉 범주가 있다. 3. 세계의 사물을 가장 근본적인 요소(本質)들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4. 세계 만물의 원인이자 목적인, 최상위에 있는 것이 있다. -- 강유원 철학사 강의 8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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